본문 바로가기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 정세랑

 

정세랑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봤다.

글이 온기를 띌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 같다. 이런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일기를 쓸 때 조선왕조실록 수준으로 세세하게 사실만을 기록하는 편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사유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어서 정말 행운이다. 비록 이번 여행도 이 작가만큼 따뜻한 여행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래도 좋았다.

작가의 문체를 좋아하고 팬이 된다는 것이 뭔지 알 것 같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다.

 

책 속 문장

"특별한 것 같지만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공동체에 속하면 비슷해진다. 그런 패턴을 확인할 때 스스로가 작아지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내가 했던 고민을 먼저 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했던 고민을 다시 시작할 사람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 가벼워지는 것이다."

 

이 말 참 좋은 것 같다. 모두가 특별하지 않다는 말에서 이를 위로할 말을 찾을 수 없었는데, 이게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지명을 알게 되고 특별하게 생각하게 되면 감수해야 할 것들이 는다. 세상의 아픈 소식을 더 아프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지니까.
(생략)
세상은 망가져 있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참히······. 그것을 알면서 여행하는 것은 묘한 일이다. 여행지에서 이르러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사실은 아름답지 않다니' 중얼거릴 때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마음은 현기증을 일으키고 만다.

 

슬프다. 나는 의도적으로 세상의 어두운 부분은 보지 않으면서 살아왔는데(물론 따뜻한 부분도),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이런 부분을 마주할 때마다 외면했던 감정이 밀려온다. 힘들지만 이를 받아들여야 내가 나아갈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아헨공과대학 본관 계단에 앉아 자정이 될 때까지 웃고 떠들었다. 주로 우리가 어디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에 대해서였다.
(생략)
계획할 때는 진심이었지만 아직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던 돌계단에서의 몇 시간을 소중히 품고 살면서도, 만나지는 못한 채로 2021년을 맞았다.

 먼 곳에서 만난 친구와 깊은 우정을 나누고 헤어지게 되는 이 과정이 아름답다. 이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지 상상 되기때문에. 그 순간을 추억하며 마음속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또 편지를 쓰고 싶다. 함께 걸었던 길을 자주 생각합니다, 저는 뒤에서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잘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고. 번역기가 잘 번역해줄지 모르겠다.

 

눈 앞에 작가의 감정과 모습이 그려질 때마다, 왠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햇님이 바람을 이기는 것처럼 슬픔보다 되레 이런 따뜻함에 눈물이 난다.

 

서로 다정한 마음이었는데 비행기에 들고 탈 수가 없어서 공항에서 울면서 만두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목을 메이게 했던 게 눈물인지 만두인지, 우리의 우정은 왜 눈물을 동반하는지.
(생략)
쑥스럽지만 어떤 날, 우리가 함께 보냈던 짧은 낮과 길게 붙잡았던 밤이 나를 구했다고 C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다.

 

우정이 너무 따뜻하고 아름답다. 길게 붙잡았던 밤.. 이라는 말이 인상깊게 와닿는다.

 

하긴 런던의 중심부도 뉴욕과 마찬가지로 너무 작았다. 국회의 사당도 작고 버킹엄궁도 작고 다 작았기에, 영국의 과오와 업적이 세계에 그토록이나 반영되어버렸던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공감백배. 세계와 역사는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는데 이를 주도한 인물이나 지역은 너무나 작아서, 이게 이렇게까지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된 일이라고?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이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사실 중심이 더 작은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작은 것들에 휘둘린다. 

 

언제나 거기 있을 것과 잠깐 거기 있는 것들 사이를 누빌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행운이었다.

 

언제나 거기 있을 것 이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생명일 뿐이라도 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미 - 구병모  (0) 2024.10.07
28 - 정유정  (1) 202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