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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책 속 문장

나는 때로 인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자연의 법칙이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곳, 모든 생명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세계, 꿈의 나라를.만약 세상 어딘가에 그런 곳이 있다면 나는 결코 거기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 손이 떨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다. 이 계단을 올라와 그와 마주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왜 안 했을까. 재형은 처음부터 그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무섭다고 호소하고 있었는데. 살아 있어 무섭고, 살고 싶어서 무섭다고. 

 

"우리는 살아 있다."
"우리는 살고 싶다."
"우리를 살게 하라."

 

가장 증오했던 대상을 구원하고, 가장 혐오했던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역설. 그 속에 구원의 비밀이 숨어 있다.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에 선행을 베풀기는 쉽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은, 정말 우리 자신의 참된 자아를 증명하는 것은, 참혹하고 비통한 시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숨 쉬는 인간성'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릴 때마다 눈뜨고 깨어나는 양심이라는 파수꾼이 끊임없이 속삭여왔다.
우리는 천벌을 받을 거야.

 

 

줄거리

 화양시에서 발생한 빨간 눈이라는 정체 모를 괴질로 인해 일어나는 일을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관찰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각 인물의 이해와 목표를 위해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각 인물들이 충돌하기도 한다. 그 중 가장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은 서재형이다.

 서재형은 어린시절 알래스카에서 자신의 개썰매팀 '쉬차'를 몰살시켰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이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화양시 내 드림랜드에서 수의사로서 살아간다. 방송에 출연하여 사람들로부터 드림랜드의 후원을 이끌어냈으나, 그의 과거를 헤집어내고 그가 진정한 수의사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한 기사로 인해 드림랜드의 후원이 끊기고 상황이 나빠진다.

 이런 상황에 빨간 눈이 세상에 등장하고, 자신이 쓴 기사의 진위 여부를 알기 위해 김윤주가 서재형에게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빨간 눈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죽고, 정부의 지원은 줄어들고, 바깥 사람들은 점점 화양시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화양시는 무간지옥이 되고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생존을 꿈꾼다.

 

 

생각

코로나와 빨간 눈

 이 책이 2013년에 출간됐는데, 코로나 시기를 지난 현재 시점에서 읽으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가 전염병으로 인해 일어나는 국가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실제 코로나가 처음 발발했을 때의 상황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깜짝 놀랐다. 이게 작가의 통찰력인가 싶기도 하고, 이제까지의 우리나라 역사를 봐왔을 때 당연한 수순이었을까 싶기도 하고.

 

박동해가 지금 태어났으면 금쪽이에 출연했을 것이다.

 회상 나왔을 때부터 생각했다. 너는 금쪽이에 나가서 오은영 박사님에게 치료를 받았어야 했다고. 부모도 마찬가지고.

 박동해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범주에 속하는 이가 맞다. 아무리 애정결핍이라 한들 그게 동물의 살인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나아가 사람까지 죽였으니 말 다 했다. 그렇지만 이런 박동해도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인간성을 갖출 기회가 있었다. 부모의 무관심과 회피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지지 않았을 거라는 소리다. 물론 그 사람들도 이런 아이가 태어날 줄 모르고 아무런 준비를 못했겠지만. 그래도 자식을 낳았으면 올바르게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책임지고 키우는 것이 부모된 도리가 아닐까.

 

재난 상황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 "나만 아니면 돼."

 코로나 초기에 "대구 봉쇄" 라는 말이 등장했던 것처럼 이 소설 전체 내용이 이를 반증한다. 정부, 바깥의 사람들, 화양시 내의 사람들 모두가. 모두 같은 생명이지만, 오히려 모두 같은 생명이기에 나를 가장 우선시 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보다 더한데.. '나'를 우선하기 때문에 동물보단 인간을, '나'를 우선하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도 내가 있는 지역을, '나'를 우선하기 때문에 남보다 나를. 인간 본성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일어나는 재난보다도 더 큰 재난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서재형이 불쌍하다.

 서재형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동물의 우위를 점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자연의 이야기를 들을줄 아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애정은 동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원망해 마지 않을 이를 사랑하게 되고, 또 구원하기도 한다. 사랑을 함으로써 그 사람을 용서하고, 구원함으로써 비통한 현실 속에 꺼지지 않는 인간 본성을 증명해낸다.

 하지만 인간 본성을 증명한 것과는 별개로 그의 삶이 안타깝다. 죄책감 속에 살아왔고, 윤주의 기사로 다시 한 번 죄책감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자신의 반려견을 모두 잃고, 소중했던 아이도 잃고, 그 과정에서 원망한 이들을 사랑하고 구원하고. 그리고 자신은 인간 없는 세상으로 떠나버린게. 이 증명과는 별개로 안타깝고 눈물이 난다. 불쌍해서.

 

강간은 인간의 악 그 자체

 책은 뒤로 갈수록 무정부 사태가 된 화양시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인간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건가? 전염병이 돌면 범죄자 혹은 범죄자가 될 사람만 싹다 죽을 확률은 0인가? 사람이 그렇게 많이 줄어드는데도 범죄자의 비율은 왜 줄어들지 않는걸까?

 솔직히 살기 위해 식량 또는 물품을 약탈하는 행위는 이해가 된다. 살기 위해 다른 이를 죽이는 것 또한 정말 극한의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극한의 상황에서 다른 이를 강간하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이거야 말로 악한 인간의 표본이 아닌가. 번식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는 납득이 안된다. 번식을 위한 게 아니라 한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함일 뿐 아닌가. 대체 무엇을 위한 악행인가. 이 행위로 내 인간 본성이 추악하다는 걸 확인받는 것 외엔 어떠한 이득도 없지 않은가. 어째서 극한의 상황에서 남을 짓밟고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가. 생존 확률을 높이지도 않는 일을 왜 벌이느냐는 말이다. 강간이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이거다. 표면적으로 어떠한 부분에서도 이익을 얻지 못하는 범죄인데 대체 뭘 위해 범죄를 저지르냐는 것이다. 인간의 '악' 그 자체를 보는 것 같다.

 

삶의 목적는 살아가는 것이다.

 화양시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죽고 도시가 황폐해지고 추악한 모습을 목격해도, 살아가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시청에 모여 다시 살아날 길을 모색하고, 모색하고, 또 모색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 삶의 이유가 살아가기 위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

총평; 28은 재난을 헤쳐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난을 "관찰"하는 이야기다.

 실제 재난 상황이 됐을 때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하나의 시나리오를 알고 싶다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책은 지루하지 않고 글은 흡입력있다. 책을 읽고 느끼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제 3자의 입장으로 봤을 때 답이 없고 막막하고 처참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살 방법을 궁리하고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 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우리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 이 자체가 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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